생각이 많아서 일까 아니면 아직 시차 적응애 안되어서 일까? 난 시처 적응에 한표 를 걸고 한숨도 자지 못했다. 밤을 꼬박새워 4시경 집에서 하는 마지막 뜨거운물 샤워를 하고 즉석 짬뽕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그래도 따뜻한 국물과 밥이 들어가니 너무나 좋았다. 그렇게 새벽에 집을 나서 5시에 공항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많은 편수의 비행 스케쥴이 잡혀 있어 공항은 사람들고 북적이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 공항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 온 브랜다와 작별 인사를 하고 체크인을 했다. 크라이스츠처치는 내가 도착한 날로부터 하루 잠시 해가 뜬곳을 제외하고 계속 흐린 날씨였는데, 오늘은 비가 오기 시작했다. 뉴스에 내가 가려고 하는 곳에 비소식과 함께 태풍이 있어 그렇지 않아도 좀 걱정이 되었었는데,,, 일정을 시작하자마자 비가 날을 맞았다.
‘ 비 너참 싫다고,,’
오클랜드까지는 1시간 30분의 비행시간이었고 난 너무 피곤해서 조금의 잠은 이룰 수 있었다. 보통 비행기 안에서는 잠을 못자는거 치고 오늘은 엄청 피곤했었나보다.
일어나기 싫은 몸을 이끌고 오클랜드 공항으로 낙오자 비자 제법 많이 내리고 있었다. 경유 시간이 1시간 이상이었기에 난 소파에 앉아서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 역시 비가 오니 바로 추워짐을 느꼈다. 대충 아무 옷이라도 한겹 더 걸쳐입고 스카프로 몸을 칭칭 감은 뒤에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기다렸다. Kerikeri까지 가는 비행기를 타는데 비가 막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정도의 비면 충분히 비행 일정이 취소 될것 같기도 하였는데,,, 다행이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을 했다. 기장의 안내 멘트가 나왔는데 오늘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에 태풍의 영향권을 받아 많은 비와 바람이 불것이라는 것이었다. 유머스러운 기장의 멘트는 우리가 단지 30분만 비행을 하기 때문에 그리 힘든 일은 아니니 우리 잘 가보자고 하는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역시 태풍의 영향권으로 비행기의 흔들림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은 기장의 안내 방송 덕분이었는지 모두가 평안한 얼굴로 각자 신문을 읽거나 잡지를 읽었는데,, 나는 너무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약 18년 전에도 시드니에서 오클랜드를 가는 에어 뉴질랜드가 엄청 흔들거서 거의 울뻔했던 기억까지 나면서 마음이 많이 불안했다. 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간들도 흘렀다. 안내 방송이 나오고 드디어 도착했다. 개인적인 생각은 오클랜드에서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 날씨 걱정 필요없이 편안히 잘 수도 있고 좋을 듯하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셔틀 버스가 다행히 있었다. 일인당 7.5$를 지불하고 우리는 시내로 갔다. 음식을 만들 연료를 샀고 (13.80$) 다음 목적지를 가기위한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Subway에서 간단한 식사겸 시간을 떼우려고 하는데 가격이 14.50$가 나왔다. 첫날부터 너무 많이 쓰는것은 아닌지 왜냐하면 하루 대략적으로 10$의 식비 예산을 잡았는데 한끼 식사가 바로 예산을 크게 넘어가는 돈이었다. 뭐 그래도 가지고 온 음식으로 6일동안은 시장 볼 일이 없을테니 시작부터 좀더 여유있게 넘어가기로 했다. 버스 시간을 기다리는 2시간동안 태블릿을 꺼내 오늘의 글도 기록하고 부족한 밧테리 충전도 하고,,,, 따뜻하게 추위를 피할 수 있는곳도 되었으니,,,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버스도 바로 이곳 서브웨이 앞에서 탈 예정이라 마음 편안히 글을 쓸 수 있었다. 이곳은 10일 후에 걸어서 다시 돌아오게 되는 마을이다. 흐린 날씨로 인해서 경치를 잘 볼 수는 없지만 작고 아담한 타운으로 다시 올때는 화창한 날씨를 기대해 본다.

우리가 Awarau(?)dㅔ는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도착을 했다. 일요일 오후 시간이라 인포메이션의 문이 닫혀 있었다. 급하게 물만 조금 챙겨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하여 cape Ringa 에 가기로 하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키치하이킹을 약 3분 시도한 결과 엄청 잘생긴 아저씨가 아이 한명을 태운채로 우리에서 도움을 손길을 내밀어 주셨다. 인형같이 생긴 아이의 이름은 Devy였고 5살 정도로 인형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사진을 한장 찍었으면 좋았을것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서 너무 안타깝다. 버스 정류장으로 부터 트래킹의 시작점까지는 약 1시간 30분정도가 걸리는 길이다. 이 첫번째 히치 하이킹으로 우리는 약 30분을 갔고, 아쉬운 이별을 해야했다. 2번째 히키하이킹은 좀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약 25분정도 기다리고 나서야 차에 올랐는데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해서 바로 내려야 했다. 마오리족 어머니는 아이를 2명 태우고 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막내의 이름은 Sindy라고 하였다. 우리는 다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때 저멀리서 배낭을 메고 걸어오는 남자 한명이 보였는데, 일본인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세명째는 어부이거나 농부로 보이는 서양분이셨다. 빨간색 자동차가 인상적이었고 그동안 찍지 못해 아쉬웠던 기념 사진도 남기게 되었다. 현지에 사시는 분이라 얼마 가지 못하고 차는 섰기에 아직까지 까마득히 시간이 더 남았다. 네번째는 또다시 first nation이었다. 그런데 그분을 자세히 보니 맥주를 마시면서 운전을 하고 계셨고, 아이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알게된 사실은 아침과 점심도 먹지 못하고 바구니에 있는 음식은 저녁에 가족들고 함께 먹어야한다며 굶주린 배에서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아무렇고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차량 뒤에 실려있는 내 배낭에서 음식을 꺼내줄 수도 없었고 미안한 마음만 많았다. 우리를 내려준곳은 음식을 살 수 있는 조그마한 가게와 깨끗한 화장실이 있었다. 다시 물을 채우고 히키하이킹을 하는데, 운은 여기까지인가보다.

저녁 7시가 되어가는 시점에 우리는 포기하고 텐트를 칠만한 곳을 찾아 나섰다. 저녁시간이고 마을이 작아서 인지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이리저리 다니며 텐트칠곳을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럭비장을 보게 되었다. 한쪽에는 숲이 우거져 있어서 위치가 너무 좋다고 생각한 우리는 빨리 짐을 풀고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었다. 비빔밥이었는데,,,, 역시 양도 많고 간편해서 너무 맛있게 먹고 있는데,,, 한 주민이 자동차를 끌고 와 이야기를 하기 원하셨다. 바로 이곳은 마오리족들의 땅이고 허가 없이 아무나 그렇게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서 좀 많이 언성을 높이셨다. 그분들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었기에 잠자코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몇번의 사과를 하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자 다행히 본인의 집 마당에 텐트를 치라고 하셨다. 그냥 길로 내쫓겨도 말못할 사정이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친절을 베풀어 주셔서 남은 음식을 급히 마무리 하고, 그분의 집 앞마당에 다시 텐트를 치는 수고도 길에 내쫓겨 방황하는 것이 비하면 완전 식은죽 먹기였다. 하지만 뭐가 문제였는지 그 후에 한 남자분이 오셨는데 아주머니와 언쟁을 하시는듯했다. 분명 우리에 대해 이야기로 언쟁을 하시는 거라 죄송한 마음이 너무 컸는데,,, 이야기를 계속듣고 있기에는 너무 피곤한 하루였기에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0개의 댓글